참기름은 귀한 영양식품이었다. 음식을 만들 때 마지막 한두방울 넣고 병주둥이에 흐르는 한 방울도 아껴서 썼다.
지금과 달리 일반 판매점에서 참기름을 사는 경우는 드물었다. 오뚜기 참기름이 1983년에 나왔지만, 당시 대부분은 기름집에서 직접 짜는 걸 선호했던 것 같다.
동네 시장에는 대부분 방앗간이 있었다. 고소한 향이 가게 근처부터 풍겨 나온다. 한쪽에는 커다란 연탄불로 달구어진 무쇠솥이 있었고. 솥 안에선 천천히 회전하는 자동 페달이 깨를 쉴 새 없이 돌려 볶아냈다.
잠시 후 볶아진 깨가 착유기를 통과하면 기름이 졸졸 나온다. 준비된 기름병에 담으면 꼭 종이봉투에 넣어준 것 같다. 기름병에 온기가 가득했던 기억이 난다.
최근 들어 참기름보다 들기름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들기름의 선호는 막국수의 인기에서 시작된 듯싶다. 동네마다 막국숫집이 하나씩 생기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들기름 막국수가 인기를 끌었다.
들기름은 좀 더 특별한 식재료로 대접받게 되었다. 최근에 방문했던 한식 코스요리 집에서는 들기름 국수가 나왔다. 묵은지에 한우 수육 한 점을 올리고 들기름으로 은은하게 맛을 낸다.
구이김 시장에도 들기름, 참기름을 선택할 수 있다. 김은 참기름을 주로 발랐지만, 들기름 선호도가 높아지지 않았나 싶다.
들기름이 건강에 좋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진 것도 인기의 비결이기도 하다. 체중감소에 효과가 있다는 리놀렌산이 많이 들어 있고 혈관 건강에 좋은 오메가 3 지방산이 풍부하다.
마침 집에서 먹을 들기름을 짜게 되어 비용을 계산해 보았다. 국산 들깨를 5말(5kg)에 5만원에 구입했다. 이걸 들고 직접 기름 착유하는 곳에 간다. 볶는 정도를 정해야 한다. 덜 볶을수록 밝은 빛이 돌고 고소한 풍미는 덜하다.
요즘 기름집은 예전과는 다르게 흡사 실험실처럼 말끔하다. 자동으로 여러 번 세척되고 체에 걸러져서 볶는 기계에 넣어진다. 이어서 스테인리스 착유기로 옮겨진다.
착유 가격은 3만 원이다. 350ml 기름병으로 5병이 나왔다. 모두 계산하면 한병당 1만6000 원이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국산 들기름은 배송비를 포함해 최소 25000원이다. 발품과 시간을 팔아 볼 만하다.
짜 놓은 들기름이 있으니 왠지 밥상이 풍성해진 듯하다. 몸에 좋다고 사놓은 엑스트라버진 올리브 오일보다 쓰임새가 많다. 아무래도 한식 위주의 식생활을 하니 그런 것 같다.
아침에는 반숙 계란에 직접 짠 들기름을 살짝 뿌려 먹는다. 나물 반찬이 남으면 비빔밥으로 먹어보려 한다. 시간이 있다면 김을 직접 들기름으로 발라 드시는 것도 권하고 싶다.
결국 음식은 맛의 기억을 찾아가나 보다. 예전의 깨 볶던 냄새에 방앗간 풍경까지 기억 속에만 있던 기름집도 다시 돌아오고 있다. 들기름을 구입하고 싶다면 요즘 기름집 방문도 함께 해보는 것은 어떨까? 전호제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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