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벽축조보다 100년 앞선 성토
취락입구서 의례거행 흔적 확인
개 제물 사용 정황 유례없어 주목
취락입구서 의례거행 흔적 확인
개 제물 사용 정황 유례없어 주목
서기전 1세기에서 서기 4세기 중엽에 형성된 진한 12국 중 하나로서, 경주 일대에 형성된 초기국가 단계 사로국이 생활했던 거주지가 신라시대 궁궐 월성 인근에서 확인돼 학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3일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에 따르면 사적 ‘경주 월성’ 발굴조사에서 3세기대 취락 양상을 확인했으며, 이러한 사로국 시기의 거주 형태가 월성 내부에서 조사된 것은 최초의 사례이다.
이에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는 오는 7일 오후 2시 발굴조사의 성과를 일반에 공개하는 현장설명회(월성 A지구 발굴현장-경주시 교동 42번지 일원, 월정교 옆)에 이어, 8일 오전 10시에는 학술 토론회(경주 힐튼호텔)를 개최한다.
이번 현장설명회에서는 월성이 왕성(삼국시대에 토축 성벽으로 구축된 형태)으로 전환되기 전인 사로국 시기 취락(3세기 전~중엽경)의 모습을 살펴본다.
공개되는 구역은 월성 서남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지점으로, 남천(南川)에 접해 있는 연약지반에 모래층이 퇴적된 지형이다.
발굴조사를 통해 3세기 전~중엽에 이러한 취약한 대지에 취락을 조성하기 위해 1.5m 높이에 가까운 성토 작업이 행해진 것으로 밝혀졌으며, 성토 재료로는 벼의 겉껍질, 식물 종자, 조개껍질 등이 혼입된 유기물질이 작업 공정별로 달리 사용됐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막대한 인력과 물자가 동원됐을 성토 작업이 성벽 축조보다 100여년 앞선 시점에 이미 진행됐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취락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의례를 거행한 흔적을 보여주는 유구도 확인됐다. 목제 기둥을 세워 만든 유구는 직경 6m가량의 원형 구조이며, 불을 질러 마무리하는 의례로 폐기된 상태였다.
유구 안에는 종류별로 2~3점씩 짝을 맞춘 토기 15점이 출토됐고, 그 토기 위로 황색 안료가 발린 마직물이 감싼 흔적이 확인되기도 했다. 특히 개를 의례 제물로 바친 정황이 발견됐는데, 이는 비슷한 시기에 유례가 없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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